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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엔 윤미전 선배의 콘서트가 대학로에서 있었습니다.
거기서 게스트 공연을 하고 뒷풀이 잠깐 앉아있다가
백륭을 길동무에게 넘기고 11시반경에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광화문이 뚫렸다"

이런 소식들이 전화와 메시지로 계속 타전되더군요.
종각역에서 내려서 조계사를 지나 안국역을 지나 '박진 사무실' 앞으로 갔을 때,
그야말로 광화문은 장관이었습니다.
10만의 인파들이 거리행진을 하며 사람들을 불려서
사방에서 광화문으로 진입을 했던 모양입니다.

1. 419이후 최초 청와대 근접 시위

함께 있던 사람들은 419이후 최초로 청와대에 가장 가까이 진입한 시위가 아닌가 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의 분노가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반증이겠지요.

광화문 주변 세곳에서 시민들의 청와대 진입이 되었습니다.
1. 삼청동 (소위 박진 사무실 앞... 나중에 박진 사무실은 계란 세례를 받았지요.)
2. 효자동 (이곳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상자도 속출하고...)
3. 경복궁역 (나중에 언론을 보니 가장 가까이 진출했더군요...)

2. 419 때는 총으로 2008년에는 물대포로!

'효자동 이발사' 라는 영화에도 있지만,
효자동은 419당시 분노로 행진하던 국민들을 향해 총을 발포한 곳이죠.
이번엔 총대신 물대포가 나왔습니다.
특히 효자동쪽 시위대에겐 물대포가 4~5개 나왔더군요.
전경들이 호스를 잡고 쏘는 것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물대포는 장거리에는 약해도 근거리에는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전경차 위에서 진을 치고 물대포를 쏴댔는데,
제가 새벽 3시 10분경 목격한데 따르면 (밤을 넘겼으니 6월1일 새벽이되겠네요)
그들로부터 약 10미터 떨어진 다른 전경차위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분에게
물대포를 집중사격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전경들이 그 차위로 올라가서 그 아저씨를 끌고 내려갔죠.
분노한 시민들 10여명이 사다리를 타고 다시 차위로 올라갔고
역시 물대포 5개정도가 집중적으로 그들을 쏘아댔습니다.
두분정도는 수압에 밀려 전경차에서 떨어지시고,
나머지 분들도 다른 전경들이 올라와서 연행해갔지요.
이때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다음날 공연이 두개나 있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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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