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성있게 대답하는 조정심 단장 말에 용기를 얻었을까? 대뜸 어려울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본다. “오랫동안 문예활동을 해오셨는데 예술적 지향이나 포부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음..신념이랄까? 동포들속에서 웃고 울며 함께 고락을 나눈다. 통일된 날에도 동포들과 함께. 동포들과 함께 춤판을 벌리고 노래도 부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신념이지요. 언제나 동포들과 함께” 그리고 이어지는 그 특유의 웃음.
이런 가무단의 신념과 진심은 감동과 기적을 낳기도 하였다.
오사까가무단 결성 35주년을 맞아서 모든 가무단 단원들이 집집마다 방문을 하였다. 방문을 하면서 집집마다 3천엔씩 모금을 하였고 모금된 돈으로 가무단 전용버스와 음향장비를 샀다고 한다.
“돈의 목적이 뚜렷하고 가무단 단원들이 일부러 찾아왔다고 해서 동포들이 돈을 선뜻 내놓으셨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이 당시 돈으로 1천만엔입니다. 다들 놀랬지요.”
그렇게 마련한 장비와 버스 덕에 일행도 순조롭게 행사를 진행하고 이동을 할 수 있었다. 8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버스나 장비가 새것처럼 깨끗했고 단원들이 무척이나 애지중지하였다. 동포들이 마련해준 것인데 어떻게 막 다룰 수 있겠냐며 당연한 듯 말하는 가무단에게서 필자는 이들이 동포들로부터 지지받고 사랑받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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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 도중에도 효고가무단 단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사진-우리나라] |
조정심 단장은 이렇게 동포들과 가무단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얘기를 더 보탠다.
“효고가무단의 견희가 총련본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에게 맞은 날이다. 1세분들 모임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공연도중 당시 상황을 알리고 호소하였다. 그런데 동포분들이 우리에게 더 힘을 주었다. 그동안 쉬운 애국 사업이 없었다며. 이것이 무엇이 무서운가? 죽을 때까지 공연하라 말씀하시며 1세분들이 격려해주었다. 이것이 가무단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급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예술소조활동을 통해 익혀왔던 무용이나 성악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가무단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전공이 무용이나 성악이었고 특이한 경우가 교토가무단장이 민족악기(주로 가야금, 거문고, 장고 등)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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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까가무단 막내들과 조정심단장(왼쪽 두번째)과 함께 기념촬영을 가졌다. [사진-우리나라] |
오사까가무단 조정심 단장은 전공이 재담꾼이란다. 보통은 둘이서 짝이 되어 하는 공연이라 지금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덧붙이는 말이 요즈음은 대부분이 재일동포 3세부터 5세까지가 공연대상인데 이들이 이전 세대보다는 말이 조금 서툴다면서 공연내용과 형식도 많이 달라졌다며 조금은 아쉬워한다.
1년에 보통 100회에서 130여 차례의 공연을 소화하는 가무단은 정말이지 동포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간다고 한다. 가무단의 주요활동은 공연활동이지만 동포들이 하는 행사나 공연에 ‘무대뒷사업’(행사나 공연시 모든 허드렛일)도 도맡아하고 일상적으로는 동포들의 예술소조활동의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단다.
결혼식, 회갑잔치, 꽃놀이, 공연, 체육활동 등 동포들이 부르는 곳이면 그 어디라도 무조건 달려가고 아무리 작은일 이라도 소홀히 대하지 않고 열성을 다하는 그들을 보면서 사랑받는 예술가의 삶이란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무단의 이런 모습은 저절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적 기량을 높이기 위해 매일매일 연습이고 1달에 한 번 씩은 교토가무단, 오사까가무단 그리고 효고가무단이 한데 모여 공동연습을 하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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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무단과 함께. 닮아 있는 모습이다. [사진-우리나라] |
그리고 언제나 신경을 쓰는 부분은 가무단 단원들이 기술신비주의에 빠져 기술을 연마하는 데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동포들에 대한 고마움과 모든 활동과 사업이 동포들을 위해서, 오로지 동포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란 걸 잊지 않기 위해 주목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동포들이 있어 가무단이 존재한다는 조정심 단장의 말이 문예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도 두고두고 남았다.
“그럼 가무단에게 우리나라는 어떤 단체입니까?”
노래패 우리나라와 통일조국의 새로운 만남으로 같은 문예일꾼으로서 인연을 맺은 지가 2년이 되가는 가무단 단원들에게 물었다.
“우리 가무단은 동작과 무용을 하면서 하는데 우리나라는 다르다. 노래만 불러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을 보고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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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가무단의 강순애 부단장의 열창모습. [사진-우리나라] |
오사까가무단 강순애 부단장의 말은 우리나라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계속 이어진다.
“우리나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측에서 우리를 멀리하고 계시는가 생각했다. 노래패 우리나라를 만나고 정이 오가면서 진보적인 분들이 많으시다는 걸 알았다. 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통일을 이루는데 제몫을 다하자.”
“남측분이라 생각 못할 정도로 통일에 대한 신념, 희망이 가득 차 있다. 노래에나 말에나. 이런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6.15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번 공연소식을 듣고 일이 있어도 도와드리자라는 맘을 먹게 됐다. 오래오래 같이 하자. 노래도 같이 부르고.” 조정심 단장의 말이다.
다음은 효고가무단 구순애 부단장의 말이다.
“난 재일동포 3세다. 강제이주 경험이 없다. 이번 일본당국의 탄압을 통해 1세들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됐다. 그동안 넉넉하게 살아왔다. 집이며 말이며 모두 다. 하지만 일본당국과 맞서 싸우며 투쟁하는 분위기와 맘을 알았고 투쟁하면서 노래하는 우리나라의 맘을 알 수 있었다.”
교토가무단의 한 단원은
“그동안 공연을 하면서 어떻게 잘 할까만 생각해 왔는데 우리나라를 보면서 맘을 전하는 거구나. 맘을 나누어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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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가무단의 노래 한자락. [사진-우리나라] |
교토가무단 단장은 “100점”이라며 웃으시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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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류모임 도중 효고가무단 단원이 끝내 울음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사진-우리나라] |
가무단은 여러 공연 중에서도 특히 동포 1세분들 모임이나 앞에서 하는 공연이 기억에 남고 마음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우리학교를 그동안 굳건히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노래패 우리나라의 말에 답한 어느 한 동포의 말에서 그 맘을 알 수 있었다.
“우리학교는 우리가 지켜온 게 아니다. 우린 6.15로 이렇게 좋은 만남도 갖고 조국방문도 할 수 있게 됐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실은 우리학교를 피땀으로 지켜온 사람들은 1세분들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누려야 할 것을 대신 후대인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다. 통일이 멀지 않았고 기필코 오겠지만 얼마 남아 있지 않은 1세들에게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1세분들에게 우리말과 우리노래, 우리춤은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1세분들 앞에서 하는 가무단의 공연은 가슴 뜨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말의 기수로 우리 노래와 춤을 춤추고 부르는 가무단이야말로 동포사회에서 민족을 이어가는 핏줄과 같으며 동포사회의 꽃이자 자랑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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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가무단과 함께 무대에 섰다. [사진-우리나라] |
아마 노래패 우리나라도 이번 일본공연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정 많은 가무단 식구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효고가무단은 전 단원이 일행 모두에게 엽서를 써서 마지막 날 전해주어 감동을 선사했고 오사까가무단은 바쁜 공연과 연습일정 속에서도 작별인사를 위해 직접 찾아와 눈물을 선사하고 교토가무단은 마지막 공연 무대뒷사업으로 끝까지 함께 맘을 나누어 주었다.
아마 노래패 우리나라도 필자의 맘과 같을 거라 생각한다.
노래패 우리나라와 교토, 오사까, 효고가무단들이 통일의 무대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그 날을 그려보며 벌써 보고싶습니다.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