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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뉴스에 김형찬님(대중음악연구가)의 기사가 났었군요 ^^;
노래팀 우리나라의 고민 [김형찬-대중음악연구가] | ||||||
| [필살의 라이브]우리나라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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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뉴스에 김형찬님(대중음악연구가)의 기사가 났었군요 ^^;
노래팀 우리나라의 고민 [김형찬-대중음악연구가] | ||||||
| [필살의 라이브]우리나라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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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미드
나는 처음에 이말이 무슨 뜻이지 몰랐다.
나중에 케이블이나 위성을 통하여 방영되어서 한참 팬들을 많이 확보하게 된
일본드라마, 미국드라마의 준말임을 알았다^^;;
이제 '북드'라는 말이 생기지 않을까?!
2차 정상회담의 기쁜소식이 이땅에 울려퍼진 날
또 하나의 기쁜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북한 드라마 '사육신'이 최초로 남쪽에서 방영된것이다.
남북합작형식의 드라마 사육신은 kbs에서 제작비를 지원하고 북한에서 제작한 드라마이다.
연출은 유명한 북한영화[림꺽정]을 연출한 장영복 연출가 이며 배우들 또한 북에서
'인민배우','공훈배우'의 칭호를 받은 유명한 배우들이 중요 배역을 맡고 있다.
배우로는 또한 '이효리'와 CF도 찍어서 잘 알려진 평양무용배우 '조명애'가
남쪽의 요청으로 주요 배역에 출연하고 있다.
나도 오늘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1편부터 KBS홈페이지를 통해서 보았다.
온통 청취율에만 관심있는 기자들 눈이나 평론가의 눈이 아닌 같은 민족의 눈으로...!
참 신선했다!
대사중에 그 뜻을 다 알아듣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시대사극이기때문에'고어'에충실했다)
사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연출과 진지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 드라마로 느껴졌다.
평소에 사극에는 별로 관심이 많지 않았지만
나도 이제 당당히 '북드' - 사육신의 팬이 되어야 겠다~~~^^
참 그러고 보니 kbs'사육신'의 원전인 북한소설 '사육신'은 이미 남쪽에 출판이 되었다.
이번에 한겨레에서 주최하는 제1회 통일독서대회의 대상도서이기도 하다.
교육부총리상과 부상으로 부터 다양한 시상내역이 있다니
이번 여름은 '북드'와 '북서'(북한도서 ㅋ)에 빠져서 2차 정상회담을 맞이하면 어떨까?~~~!!!
<표절 동영상 보기>
1.
저번주였던지...
벗들과의 술자리였다.
한창 이야기가 꽃을 피운 가운데
옆 자리에 앉은 사람 핸드폰이 울었다.
그 음은 분명히 [소리쳐]인데
영어로 부르고 있었다.
이승철 노래를 누가 리메이크했나? 싶어서
벗들에게 방금 벨소리 들었냐고 물었더니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핀잔만 들었다.ㅎㅎ
그리고 몇일후.
이 동영상이 인터넷을 강타했다.
41곡중
[소리쳐]는 첫번째 비교대상곡~
굉장히 길어요.ㅠㅠ 그래도 보시려면 짤깍~ㅎㅎ
선배들이 들으면 웃거나 야단치거나, 후배들이 들으면 어처구니 없다며 속으로 비웃거나 할지 모른다. 민중가요계에 데뷔한지 이제 만13년을 맞이했다.(제발 웃어주길..) 처음 접한 걸로 치면 20하고도 몇년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민중가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남들보다 불필요하게 심각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그래서 가끔은 불필요하게 오해도 받는다. 뭐 그리 심각하냐고.. 얼마전 25년만에 초등동창생들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친구가 한마디 한다.
“얜 초등학교때도 저 표정이었어..야~ 하나도 안 변했네..”
어쨌든 나는 중학교때 민중가요를 처음 접했고 고등시절을 보냈다.
사실 이때의 나는 어찌 표현하면 지극히 교과서적인 사춘기를 보내던 녀석이다. 질풍노도 뭐 어쩌구하는 시기 있지 않은가. 이성 뿐 아니라 종교, 철학, 역사, 문학, 그리고 음악등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짐작한바와 같이 제대로 했던 건 하나도 없다. 이 편력의 역사를 풀어내자면 또 무지하게 어지러운 난장이 펼쳐지니 나중으로 미루자.
암튼 당시 시대가 또 그러했다. 김세진, 이재호열사의 죽음을 <목격>하진 않았지만 그 날 현장주변 버스안에 있었던 고딩이었고, 학교에 등교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학생들 데모 이야기가 거의 매일 주된 대화 소재였다. 난 밤이면 우리집 하숙생형들의 열띤 토론과 술자리에..,그리고 휴일 대낮에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이 당시 나의 심장을 후벼팠던 노래는 ‘죽창가’였다. 당시 나의 꿈이 성악가였던 걸로 봐서는 가곡풍의 노래가 나를 움직였음에 분명하다. 하숙하던 형이 나에게 “대학 들어가면 <이런 곳에 가봐라>”라며 보여준 노래책(손으로 만들고 제본되어있던 ‘메아리’)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당시 내가 느꼈던 노래들의 개념을 더듬어 말하면 ‘민중가요’라는 명칭보다는 내용적으로 ‘데모노래’, ‘역사노래’, 개사한 ‘복음성가’, ‘저항음악’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했고, 구체적으로는 ‘김민기’, ‘노찾사’, ‘아침이슬’, ‘작은연못’,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아이콘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김민기의 음악을 기타로 치며 녹음까지 한 걸로 봐서는 꽤 열성 팬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노래패를 시작했다.
계속 읽기
<한겨레 최재봉 기자>
올해 200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서 ‘2000년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2’라는 제목으로 615시대의 문학에 대한 논의를 실었다고 한다. 여름호에 이어 논의의 지속이라고 한다. 615시대라는 시대규정에 대한 논의부터 여러 이야기들이 오간 모양이다. 아직 구입하진 못했으나 살짝 지름신이 발동하려한다.
그동안 615시대에 대한 담론이 사회일반에 걸쳐 폭넓게 제출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615공동선언이 사회 일반에 끼친 무게감에 비해 학술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담론화 시켜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분단현실이 가져다준 또 다른 부담감 이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야 말할 것도 없는 일이고, 그에 비해 문학계에서의 움직임은 사실 거침이 없다. 지난 뉴스이긴 하지만 남북작가대회가 성사 되었으면, 지난 10월에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민족문학인협회까지 결성되었다. 이와 같은 모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에 따라, 문학계 내의 시선에 따라 또 다르겠지만 사실 문학계가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고생들이 있었다. 1987년 이후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88년에야 북한문학의 일부가 해금된다. 그리고 89년 남북작가들이 판문점에서 만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어쩌면 그 때 이후 근 20년만에 남북의 작가가 모였고 한 덩어리가 된 셈이다. 아직 전체 남북예술계가 한데 모일 날까지는 시일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분명 문학계가 초석을 놓은 것 만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선봉대인 셈이다.
글쓰고, 말하기에 능한 예술가들 사이에서 615시대의 문학에 대한 논의가 한층 더 무르익었으면 좋겠다. 또한 문학 뿐 아니라, 영화, 음악등의 다른 예술영역에도 이와 같은 긍정적인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615이후 지난해까지 여러 부문에서 남북간의 만남이 성사되었고 각자의 대회가 최소 한차례씩 이루어 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술계에서만큼은 단일한 대회가 단 한 차례도 성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문학계에게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다른 예술분야들은 2년, 아니 2개월 정도로 줄여 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북의 전체 예술진영까지 폭넓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논의될 615시대의 문학예술의 전망에 대한 심도깊은 이야기가 벌써 궁금해진다. 이번 문학인들의 담론은 향후 더욱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될 심지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_상구)
“진보음악은 진보적인가? 그렇다”
“민중가요는 진보적인가? 그렇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이 진보적 이념, 진보적 가치를 품고 있어 그러할 뿐이다. 하지만 노래는 가사의 내용만을 가지고는 너무 단편적이라 때에 따라서는 토론하기 매우 불편한 주제가 되기 쉽다. 특히 음악은 선율의 예술이라고도 하고, 가사와 선율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며, 편곡이라는 멋드러진 옷을 입히는 과정, 그리고 그 음악을 소화해 내는 가수, 그리고 소리를 배합하는 믹싱과 최종 마스터링 과정의 총체적인 결정체이다.
예술형상에 있어 예술가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명제는 역시 ‘무엇을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일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예술가는 창작의 쓴맛, 단맛을 다 보게 되며 좌절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받게 되는 질문이며 자기 요구이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작품의 내용을 중심에 놓고 작품을 바라 보는 것은 ‘무엇을 형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이 부여받은 사회적 책무로서의 요구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나왔고,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번뜩이는 군부의 총칼을 조심스럽게 곁눈질 하며 살아야 했다. 무엇을 형상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사회 참여적 작품 활동 이었다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것이 당시 예술가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후대들은 어쩌면 그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신작로를 걸어갈 뿐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가 진리이듯, 우리 사회는 진보했고, 논란이야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남북정상이 만나서 통일을 하자고 했고, 수많은 국민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지금 현 정권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 구석구석이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덕분에 적과 아의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했고, 민주화에 무임승차하는 수많은 인생들도 생겨났다. 그렇다고 예술의 사회적 참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고, 유연성을 요구하며, 더 정밀하고 세련되길 요구한다. 그리고 예술과 인간세계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무엇을 형상할 것인지는 유효한 패러다임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사회가 이리 복잡해지는 까닭에 이제는 무엇을 형상할 것인지와 동시에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라는 연이은 질문에 복잡한 머리를 쥐 뜯어야 함을 상기하게 된다. 사회적 실천의 구호도 ‘해야 한다’라는 외침형 구호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을 제시해야하는 숙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운동이 보다 더 대중운동 다워지기 위해 진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음악이, 우리의 예술운동이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주장이라서 보편적이지 않다 할 수 있겠지만나는 예술창조는 본성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표현했다. 더군다나 진보적인 내용을 품고 있는 진보음악, 민중가요가 진보적이지 못할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에도 진보적인 생각이 녹여 나야한다. 내용이 진보적인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는 사실 끝이 났다.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진보의 냄새가 나야한다. 가사 어휘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것에서 부터, 선율을 그려내고, 소리를 내는 모든 것, 음반의 쟈켓부터 나의 노래를 들려줄 대중들의 폭과 넓이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 그들에게 전달되어지는 모든 과정까지 과거보다 더욱 진보해야 한다. 운동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는가. 때문에 나는 현재 우리 민중가요가 진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내용적으로는 과격하고 형식적로는 고루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또 놀라울 정도로 보수적인 것은 아닌가? 형상방법은 대체로 동일하며 가수들의 목소리와 무대에서의 행위는 또 지극히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닌가? 정치적 구호에는 민감하게 가사로 풀어내지만 ‘문건’과 ‘가사’의 차이를 구분 못하고 형상화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민중가요는 진정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 자꾸 되묻게 되는 것이다. 애써 아니라고 응답하더라도, 과거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말해보아도, 혹시 내 의식의 한 귀퉁이 에서 그건 너무 억울한 변명이 아니냐는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적 진보와 민중들의 의식발전,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땅의 문화 속에 우리의 노래에 속도를 붙이기에는 우리의 몸은 너무 무겁고, 너무 많은 옷을 껴입은 것은 아닌가 말이다.
우리 음악은 진보하고 있는가? (by 상구)
왜 그러느냐고? 어떤 예술가가 자기의 예술창조의 기조가 보수적이라고 얘기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예술가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창조는 예술가에게 늘 새것 일 수 밖에 없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소재 혹은 주제가 과거 작품과 동일하게 느꼈다고 해당 작품을 보수적이라거나 표절이라는 식으로 매몰차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경우 일수록,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 한 장면을 오마쥬 하면 할수록 이는 결국 과거 작품의 진보성을 반증 하는것이다. (과거 그 작품에 새롭고 놀라운 창조성이 없었다면, 아무도 모티프를 얻거나 오마쥬 하지 않을 것이므로..아마 과거 그 작품은 후대 들에의해 계속 진보 할것이다.)
예술작품은 완제품이 출시되는 순간 낡은 무엇이 되는 전자 제품이 아니다. 예술작품이 창조되는 과정을 보면 창작자의 머릿속에서는 늘 낡은 것이 밀려나고 새롭고 진보적인 생각들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예술 창작과정을 간단하게 표현해 보면 사색-배치-창조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창작의 순간 앞뒤로 수많은 생각이 예술가들의 머릿속을 비집고 다닐것이고, 이때 예술가들의 철학이 주요한 거름망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이 사색의 과정이다. 그리고 걸러진 무엇을 예술가 자신이 가진 매체와 독특한 표현방식을 통해 배치하게 될 것이다. 어떤이는 글자를 배열하기도 하고, 누구는 오선지에 음을 하나하나 기록하기도 한다. 이것이 배치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의 과정을 지나면 창조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창조했다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예술가는 이 세가지 사이클을 수시로 넘나들게 마련이다.
사색-배치-창조의 사이클은 예술가에 따라서는 수 만번을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추출된다. 이 과정에서 낡은것을 밀어내는 힘이 나온다. 어쩌면 이 과정이 예술가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럽고 또 열정에 취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 수만번의 사색과, 계산과, 지우기와 필터링을 통해 시작되는 그 첫 작업(첫번째 선택일수도 있다), 그것은 이미 그간의 모든 과정이 응축된 가장 고차원적이며 최고양질의 작업이 된다. 창작자의 그 첫 작업(그 첫 번째 스케치, 그 첫 번째 음, 그 첫 문장)은 이미 그에게는 대단히 새로운 것임과 동시에 병렬로 놓여져 있던 수많은 가능성들을 파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제 그 첫 작업을 통해 그 작품의 운명은 어느 정도 정해질 것이며 그 작품이 창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첫 작업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다. 얼마나 오랜 사색과 배치의 결과였겠는가.
이제 작품이 완성되고 후속작품을 창조하려할 때 작가는 과거에 작업 했던 것과 동일한 첫 작업은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다른 접근방식이거나, 전혀 새로운 해석이거나, 설사 기존 방식과 동일하다 해도 예전에 접어 두었던 다른 가능성중 하나로 풀어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순환의 과정을 이 세상 수많은 예술가는 오늘도 진행하고 있다. 또 이 과정이 몇세대를 지내고 나면 재료의 진보, 과학의 진보, 내용과 형식의 진보등을 통해 예술창조는 진정 진보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예술가들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를 들어보라.. 진보하는 소리다.
“예술창조는 본성적으로 진보적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든 예술이 진보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예술이라는 녀석의 본래 갖고 태어난 천성이 진보적이라는 말일 뿐이다. 알다시피 천성대로만 살아지지 않으니 복잡하고 또한 재미있는 것이 예술인 것이다. (by 상구)
| ‘충격요법’보다 충격을 '줄이는게' 먼저 | |||||||||||
[음악칼럼] 남측가수의 방북공연을 보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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