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민중가요를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내게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민중가요를 한다고 한다. 노래 부르는 일을 그만둔 이후로는 연출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남에게 나의 존재가 무엇으로 인식이 되든지 그건 차후의 문제이고, 정확히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다.’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다.’ ‘나는 예술가다.’ 틀린 답도 아니고, 틀릴 까닭도 별로 없는 답이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아 왔으니..., 나는 이 쑥쓰러운 고백과도 같은 문답에 대해 역질문을 한다. 그럼 너는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나는 답 한다.
“민중가요를 한다.”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 ‘음악을 <더> 잘하기 위해서’. ‘예술을 <더> 잘하기 위해서’..
틀린 답일까?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민중가요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대체로 웬 뜬금없는 질문이냐며 되묻는다. 하지만 그 주제 하나만으로도 밤을 새우기에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그 주제 하나만으로도 밤을 새워야 한다. 지금 시대에는 이에 대한 토론도 없고, 논쟁도 없기에, 또 이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명하지 못할 것이고, 해서도 안 되기에 우리에게는 몇 달 밤이라도 지새울 가치가 충분한 주제이다.
나에게 민중가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같은 의미의 대답 두 가지를 갖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자주적 지향이 담긴 노래’라고 표현하고, 또 하나는 ‘사람의 생활을 통째로 담은 노래’라고 한다. 첫 번째 답은 조금은 철학적으로 보이고, 또 조금은 운동적인 대답이다. 후자는 나의 주관적 견해가 좀 더 많이 담긴 대답이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다른 의미처럼 들릴 수는 있지만 나는 같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어떻게 형상할 것이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같다는 의미일 수 있다. 민중가요 작가라면 작가가 지닌 민중적 가치로 형상할 것이고 바라볼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민중적 가치로 인간을 그리게 되면 그 인간의 삶을 통째로 그리던 그 어떤 운동적 가치로 그리던 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는 주장이다. 작가의 인생철학과 작품이 일치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의 이 대답에 의거하면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민중가요 종사자 이지만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차이를 구분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이 구분에 의해 향유자가 구분되어지는 것도 또한 경계한다. 이 구분에 의해 현장성과 대중성이 괴리되는 것을 아주 경계한다. 이 구분에 의해 음악적 노력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경계한다. 이 구분에 의해 우리가 알고 느끼고 있는 대부분의 차이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 접근법에 의하면 현존하는 많은 대중가요가 민중가요가 되기도 하고 모든 민중가요가 대중가요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민중가요를 데모노래나 투쟁가 정도로 인식하는데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단지 사람에 따라 좋은 대중가요와 나쁜 대중가요, 내용적으로 건전가요와 퇴폐가요, 혹은 저항가요등이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몽상수준일수도 있겠지만 노래운동은 노래를 통해 모든 대중가요가 민중가요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민중가요의 개념은 어쩌면 데모노래나 투쟁가로 인식되어져 있을것이다. 87년이후 민주화투쟁이 본 궤도에 올랐을 때부터 90년대까지, 민주화 세력에게는 정권과의 심각한 대치정국이었다. 당시 적과 아는 분명했으며 거의 대다수의 민중들은 어깨를 걸고 함께 거리로 나왔다. 많은 투사들의 피와 땀과 투쟁이 동반됨으로 가능했지만 ‘독재타도 민주쟁취’ 이 하나의 구호만으로도 사람들이 모일 이유는 충분했고 승리의 짜릿한 쾌감도 맛보았다. 90년대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이라는 허울이 들어서긴 했지만 민주화의 길은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 IMF시절 학생운동은 천덕꾸러기 마냥 극심한 탄압에 직면했고 대치상태는 상상을 초월했다. 학내에 공포탄을 쏴대는 사복경찰이 수시로 드나들었으니 말 다했다. 80년후반에서 90년대를 걸어오면서 민중가요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력은 미비해졌지만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애창되었고 많이 불리워졌다. 이당시 민중가요의 개념은 투쟁가 혹은 데모노래로 인식되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데모했고 투쟁했으니 말이다.
김대중정권이 들어서고 615공동선언이 나왔다. 믿기 어려운 변화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비전향장기수는 북송되었고, 남과북의 하늘길 뱃길이 열렸고, 경의선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과거 투쟁 없이는 진행할 수 없었던 통일행사를 민관이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긴 만큼 과거 운동으로 책임(?) 졌던 영역이 순식간에 넓어졌다. 대중들과 운동세력들과의 인식의 차이도 많이 좁혀졌으며, 대중들은 이제 상징적 구호에 반응하지 않고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변했다. 집회문화도 많이 바뀌어 졌다. 운동은 이제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대중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 피켓과 유인물로 넘쳐나던 시위현장이 아니라 각종 조형물과 퍼포먼스가 함께 펼쳐지는 예술적 공간으로 변해 갔다. 그만큼 대중들의 의식을 파고드는 것이 과거 보다 더 어려워 진 셈이기도 한 것이다.
남북 관계는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남측내 사회는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뉴라이트가 생겨나고 IMF 신자유주의가 들어온 이후로 계급 계층간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노동의 유연성을 핑계로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양산되었고, 여지없이 중산층은 무너졌으며 과거 핍박받던 소수를 일컫는 ‘민중’의 개념은 국민 대다수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사실 본래의 ‘민중’의 의미로 안착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기쁨과 혼란이 중첩되어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복잡한 군중들을 상대로 우리는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하고 무대에 선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거 적과아의 대치 국면 속에서 소위 우리편을 감히 대변한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고 불러 왔던 예술행위가 계속 유효한 것인가 자문해 본다. 대답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상은 달라진것 같으나 여전히 핍박과 탄압은 존재하고, 차별과 인권유린은 있으며 민중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 유효하다. 그러나 과거보다 더 끈질기며 멀리 볼 필요가 있고, 과거와는 달리 여우처럼 날렵하고 유연해져야 하고, 보다 대중속으로 폭넓게 파고들도록 작전해야 한다는 숙제가 생겼다는 점이 달라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변화다. 미군철수를 노래하더라도 과거 ‘주한미군철거’로 일관했던 노래들에서 이제는 작가 나름의 독창적 형상 접근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작품(예를 들면 ‘어느 군인의 탈출기’라거나, ‘어느 군인의 향수’라거나 하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다. 또한 그래야 ‘주한미군철거’나 ‘통일’이 더 이상 식상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는 예술적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과거 민중가요와 대중가요를 나누었던 그 무엇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그 차이만으로 민중가요를 지켜갈 수는 없는 시대이며, 이미 그 차이는 사라진지 오래다. 음악에서 민중적 가치의 유무는 있다 하더라도 그 무슨 차이로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눌 수 있겠는가. 누가 우리 음악의 향유자를 ‘민중’이니 ‘대중’이니 하는 식으로 나눌 수 있겠는가. 세상이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바뀌어 나갈 것이고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깨어 있으라 주님이 어느 때에 오시는지 모르지 않도록’이라는 성경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한번 경험했다.(615공동선언이 나에게는 그 정도의 충격이었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음악으로 운동을 한다 하며 존재하는 이유이며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주동적인 자세다. (_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