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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리나라의 디지털 싱글음반이 발매 되었습니다.
'그대 잘 지내시나요" , "함께 있는 이 순간" 2곡이 수록되어 있지요 ㅎ
아래를 클릭하셔서 많이많이 들어주세요~~~~~!!! ^^v

울나라 디지털싱글 벅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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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때 많이 와주실거죠? ^^;

마우스 오른쪽 클릭하셔서 저장하시면 됩니다 ^^


 




 


그대 잘 지내시나요 반주받기

함께 있는 이순간 반주받기
Posted by 울라라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희망콘서트 '우리가 해요'의 첫번째 주자로 저희들이 공연을 합니다.

9월 17일(목) 저녁7시30분 성미산 마을극장 이구요, 1시간 30분정도의 단독콘서트로 진행됩니다.( 입장가 : 일반-20,000원  학생-15,000원 )

드럼,베이스 두분의 연주자만 모시고 나머지 악기들은 '우리나라' 단원들이 직접 연주하는
가을밤에 어울리는 어쿠스틱한 콘서트가 될것입니다 ㅎㅎㅎ

이번 공연의 제목은
"보건의료노조 비정규.해고(구속)노동자를 위한 기금마련 희망과 연대를 위한 희망콘서트"
입니다. ^^

많은분들이 함께 희망과 연대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성미산 마을극장 오시는 길

전철 6호선 망원역 1번출구(도보5분)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249-10 지하2층

* 더 자세한 '희망콘서트' 블로그 보러가기


Posted by 울라라

컬쳐뉴스에 김형찬님(대중음악연구가)의 기사가 났었군요 ^^;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글이기에 퍼왔습니다~!!!

 

노래팀 우리나라의 고민                                                        [김형찬-대중음악연구가]

[필살의 라이브]우리나라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
   
1999년에 만들어진 노래팀 우리나라. 꽃다지와 더불어 현재까지 민중가요의 양대 팀으로 존재하고 있다. [김형찬 _ 대중음악연구가] 
▲ 1999년에 만들어진 노래팀 우리나라. 꽃다지와 더불어 현재까지 민중가요의 양대 팀으로
    존재하고 있다.

1980년대 불붙기 시작했던 민주화투쟁은 민중을 주체로 세우려는 민중문화운동을 낳았고
음악분야에서는 대학가의 노래패가 주도했던 한국판 프로테스트 포크운동이라 할 수 있는
‘민중가요’라는 새로운 음악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노찾사, 노동자노래단, 새벽 등을 비롯한 전문 노래팀이 출현하여 19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이루었다. 1993년 문민정부로 평화적 정권이양이 이루어지고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마저 붕괴하자 이런 문화운동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게 되어
민중가요 진영도 팀이 해체되고 솔로 가수들의 활동으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 창단한 노래팀 꽃다지만 외로운 팀활동을 하고 있을 1999년에 ‘우리나라’라는
노래팀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통일에 관한 노래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팀이름도
우리나라라고 지었다. 이들의 때늦은 뒷북출현에 모두들 의아했지만 우리나라는 대학교 교내
행사에 자주 초대되어 희미해져가던 대학과 전문노래팀과의 교류를 이어나갔고
7.4남북공동성명 29돌 기념식(2001) 6.15남북공동선언 2주년기념식 공연(2002, 금강산)
민족통일대축전 남북공동행사 개막식(2002) 8.15민족대회 공연(2003, 평양) 등 대형 남북교류
행사에 단골로 출연하며 팀이름 우리나라에 걸맞는 통일노래꾼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2002년에만 총 260회의 공연을 치루면서 꽃다지와 더불어 현재까지 민중가요의
양대 팀으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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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라라
 

  선배들이 들으면 웃거나 야단치거나, 후배들이 들으면 어처구니 없다며 속으로 비웃거나 할지 모른다. 민중가요계에 데뷔한지 이제 만13년을 맞이했다.(제발 웃어주길..) 처음 접한 걸로 치면 20하고도 몇년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민중가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남들보다 불필요하게 심각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그래서 가끔은 불필요하게 오해도 받는다. 뭐 그리 심각하냐고.. 얼마전 25년만에 초등동창생들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친구가 한마디 한다.


“얜 초등학교때도 저 표정이었어..야~ 하나도 안 변했네..”


어쨌든 나는 중학교때 민중가요를 처음 접했고 고등시절을 보냈다.

사실 이때의 나는 어찌 표현하면 지극히 교과서적인 사춘기를 보내던 녀석이다. 질풍노도 뭐 어쩌구하는 시기 있지 않은가. 이성 뿐 아니라 종교, 철학, 역사, 문학, 그리고 음악등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짐작한바와 같이 제대로 했던 건 하나도 없다. 이 편력의 역사를 풀어내자면 또 무지하게 어지러운 난장이 펼쳐지니 나중으로 미루자.


  암튼 당시 시대가 또 그러했다. 김세진, 이재호열사의 죽음을 <목격>하진 않았지만 그 날 현장주변 버스안에 있었던 고딩이었고, 학교에 등교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학생들 데모 이야기가 거의 매일 주된 대화 소재였다. 난 밤이면 우리집 하숙생형들의 열띤 토론과 술자리에..,그리고 휴일 대낮에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이 당시 나의 심장을 후벼팠던 노래는 ‘죽창가’였다. 당시 나의 꿈이 성악가였던 걸로 봐서는 가곡풍의 노래가 나를 움직였음에 분명하다. 하숙하던 형이 나에게 “대학 들어가면 <이런 곳에 가봐라>”라며 보여준 노래책(손으로 만들고 제본되어있던 ‘메아리’)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당시 내가 느꼈던 노래들의 개념을 더듬어 말하면 ‘민중가요’라는 명칭보다는 내용적으로 ‘데모노래’, ‘역사노래’, 개사한 ‘복음성가’, ‘저항음악’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했고, 구체적으로는 ‘김민기’, ‘노찾사’, ‘아침이슬’, ‘작은연못’,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아이콘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김민기의 음악을 기타로 치며 녹음까지 한 걸로 봐서는 꽤 열성 팬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노래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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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라라
 

“진보음악은 진보적인가? 그렇다”

“민중가요는 진보적인가? 그렇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이 진보적 이념, 진보적 가치를 품고 있어 그러할 뿐이다. 하지만 노래는 가사의 내용만을 가지고는 너무 단편적이라 때에 따라서는 토론하기 매우 불편한 주제가 되기 쉽다. 특히 음악은 선율의 예술이라고도 하고, 가사와 선율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며, 편곡이라는 멋드러진 옷을 입히는 과정, 그리고 그 음악을 소화해 내는 가수, 그리고 소리를 배합하는 믹싱과 최종 마스터링 과정의 총체적인 결정체이다.


예술형상에 있어 예술가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명제는 역시 ‘무엇을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일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예술가는 창작의 쓴맛, 단맛을 다 보게 되며 좌절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받게 되는 질문이며 자기 요구이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작품의 내용을 중심에 놓고 작품을 바라 보는 것은 ‘무엇을 형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이 부여받은 사회적 책무로서의 요구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나왔고,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번뜩이는 군부의 총칼을 조심스럽게 곁눈질 하며 살아야 했다. 무엇을 형상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사회 참여적 작품 활동 이었다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것이 당시 예술가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후대들은 어쩌면 그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신작로를 걸어갈 뿐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가 진리이듯, 우리 사회는 진보했고, 논란이야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남북정상이 만나서 통일을 하자고 했고, 수많은 국민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지금 현 정권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 구석구석이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덕분에 적과 아의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했고, 민주화에 무임승차하는 수많은 인생들도 생겨났다. 그렇다고 예술의 사회적 참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고, 유연성을 요구하며, 더 정밀하고 세련되길 요구한다. 그리고 예술과 인간세계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무엇을 형상할 것인지는 유효한 패러다임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사회가 이리 복잡해지는 까닭에 이제는 무엇을 형상할 것인지와 동시에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라는 연이은 질문에 복잡한 머리를 쥐 뜯어야 함을 상기하게 된다. 사회적 실천의 구호도 ‘해야 한다’라는 외침형 구호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을 제시해야하는 숙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운동이 보다 더 대중운동 다워지기 위해 진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음악이, 우리의 예술운동이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주장이라서 보편적이지 않다 할 수 있겠지만나는 예술창조는 본성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표현했다. 더군다나 진보적인 내용을 품고 있는 진보음악, 민중가요가 진보적이지 못할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에도 진보적인 생각이 녹여 나야한다. 내용이 진보적인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는 사실 끝이 났다.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진보의 냄새가 나야한다. 가사 어휘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것에서 부터, 선율을 그려내고, 소리를 내는 모든 것, 음반의 쟈켓부터 나의 노래를 들려줄 대중들의 폭과 넓이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 그들에게 전달되어지는 모든 과정까지 과거보다 더욱 진보해야 한다. 운동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는가. 때문에 나는 현재 우리 민중가요가 진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내용적으로는 과격하고 형식적로는 고루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또 놀라울 정도로 보수적인 것은 아닌가? 형상방법은 대체로 동일하며 가수들의 목소리와 무대에서의 행위는 또 지극히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닌가? 정치적 구호에는 민감하게 가사로 풀어내지만 ‘문건’과 ‘가사’의 차이를 구분 못하고 형상화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민중가요는 진정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 자꾸 되묻게 되는 것이다. 애써 아니라고 응답하더라도, 과거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말해보아도, 혹시 내 의식의 한 귀퉁이 에서 그건 너무 억울한 변명이 아니냐는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적 진보와 민중들의 의식발전,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땅의 문화 속에 우리의 노래에 속도를 붙이기에는 우리의 몸은 너무 무겁고, 너무 많은 옷을 껴입은 것은 아닌가 말이다.


우리 음악은 진보하고 있는가? (by 상구)

Posted by 울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