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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3 존재의 이유 (1)
 

  선배들이 들으면 웃거나 야단치거나, 후배들이 들으면 어처구니 없다며 속으로 비웃거나 할지 모른다. 민중가요계에 데뷔한지 이제 만13년을 맞이했다.(제발 웃어주길..) 처음 접한 걸로 치면 20하고도 몇년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민중가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남들보다 불필요하게 심각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그래서 가끔은 불필요하게 오해도 받는다. 뭐 그리 심각하냐고.. 얼마전 25년만에 초등동창생들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친구가 한마디 한다.


“얜 초등학교때도 저 표정이었어..야~ 하나도 안 변했네..”


어쨌든 나는 중학교때 민중가요를 처음 접했고 고등시절을 보냈다.

사실 이때의 나는 어찌 표현하면 지극히 교과서적인 사춘기를 보내던 녀석이다. 질풍노도 뭐 어쩌구하는 시기 있지 않은가. 이성 뿐 아니라 종교, 철학, 역사, 문학, 그리고 음악등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짐작한바와 같이 제대로 했던 건 하나도 없다. 이 편력의 역사를 풀어내자면 또 무지하게 어지러운 난장이 펼쳐지니 나중으로 미루자.


  암튼 당시 시대가 또 그러했다. 김세진, 이재호열사의 죽음을 <목격>하진 않았지만 그 날 현장주변 버스안에 있었던 고딩이었고, 학교에 등교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학생들 데모 이야기가 거의 매일 주된 대화 소재였다. 난 밤이면 우리집 하숙생형들의 열띤 토론과 술자리에..,그리고 휴일 대낮에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이 당시 나의 심장을 후벼팠던 노래는 ‘죽창가’였다. 당시 나의 꿈이 성악가였던 걸로 봐서는 가곡풍의 노래가 나를 움직였음에 분명하다. 하숙하던 형이 나에게 “대학 들어가면 <이런 곳에 가봐라>”라며 보여준 노래책(손으로 만들고 제본되어있던 ‘메아리’)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당시 내가 느꼈던 노래들의 개념을 더듬어 말하면 ‘민중가요’라는 명칭보다는 내용적으로 ‘데모노래’, ‘역사노래’, 개사한 ‘복음성가’, ‘저항음악’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했고, 구체적으로는 ‘김민기’, ‘노찾사’, ‘아침이슬’, ‘작은연못’,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아이콘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김민기의 음악을 기타로 치며 녹음까지 한 걸로 봐서는 꽤 열성 팬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노래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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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