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022012  이전 다음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  
  •  
언젠가 꼭 한번 윈디시티를 만나보고 싶었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라이브하는거 한번 본후로는 직접 본 일이 없었으니
올해 공연이 있으면 꼭 한번 봐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윈디시티의 리드보컬이자 드러머 김반장의 글을 꼭 한번 포스팅 하고 싶었다.
아마 내 개인 블로그를 계속 유지 했었더라면 그곳에서 나름 길게 다루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고민하는 음악에 대한 썰과 동시에 말이다..
이미 지난일이니 건드리기엔 뭐하다..

사실 고백컨데 아래 글을 보면 그의 내공빨과 식견으로 인해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고,  
그로인해 오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윈디시티의 홈페이지에도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평택에 평화를, 대추리 솔부엉이 Dub>이다.
윈디시티의 EP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이미 오래된 글이지만
음악을 들으며 그의 생각을 읽어 보는 것도 나름 오늘 하루를 의미있게 보낼만한 조그만 장치다
. (_상구)




김반장의 글


Posted by 울라라

연탄

LIFE STORY/MUSIC DIARY 2006/12/12 15:05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다가올 겨울, 벌서 우리곁에 추운 세상. 노래로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 '포장마차에서...'라는
소박한 제목도 달아봅니다. 추운 기억들이 포장마차 따듯한 국물 한그릇에 잠시 녹듯
우리의 고단한 삶들도 이 노래 한자락에 잠시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2003년 겨울문턱 포장마차에서 이 광 석




이광석 1집 수록곡

1. 연탄
2. 퇴근길
3. 낙엽이 눈처럼 쌓여
4. 취한 편지한통
5. 우리 민구
6. 그대 내일을 살고자 한다면
7. 막걸리 한 사발
8. 그대 나와 함께



연 탄

안도현 시
강종철 곡


삶이란 나아닌 다른이에게
기꺼이 연탄한장 되는 것
방구들 싸늘해지는 가을녘에서
이듬해 봄눈 녹을때까지

*해야할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이
제몸에 불이 옮겨붙었다하면
하염없이 뜨거워 지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게 두려워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한장도
되려하지 못했나보다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아닌 다른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편곡/녹음/믹싱 : 한기룡, 일렉트릭기타 : 신희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광석 그는? (<=짤깍 )

Posted by 울라라
 

“진보음악은 진보적인가? 그렇다”

“민중가요는 진보적인가? 그렇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이 진보적 이념, 진보적 가치를 품고 있어 그러할 뿐이다. 하지만 노래는 가사의 내용만을 가지고는 너무 단편적이라 때에 따라서는 토론하기 매우 불편한 주제가 되기 쉽다. 특히 음악은 선율의 예술이라고도 하고, 가사와 선율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며, 편곡이라는 멋드러진 옷을 입히는 과정, 그리고 그 음악을 소화해 내는 가수, 그리고 소리를 배합하는 믹싱과 최종 마스터링 과정의 총체적인 결정체이다.


예술형상에 있어 예술가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명제는 역시 ‘무엇을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일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예술가는 창작의 쓴맛, 단맛을 다 보게 되며 좌절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받게 되는 질문이며 자기 요구이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작품의 내용을 중심에 놓고 작품을 바라 보는 것은 ‘무엇을 형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이 부여받은 사회적 책무로서의 요구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나왔고,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번뜩이는 군부의 총칼을 조심스럽게 곁눈질 하며 살아야 했다. 무엇을 형상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사회 참여적 작품 활동 이었다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것이 당시 예술가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후대들은 어쩌면 그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신작로를 걸어갈 뿐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가 진리이듯, 우리 사회는 진보했고, 논란이야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남북정상이 만나서 통일을 하자고 했고, 수많은 국민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지금 현 정권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 구석구석이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덕분에 적과 아의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했고, 민주화에 무임승차하는 수많은 인생들도 생겨났다. 그렇다고 예술의 사회적 참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고, 유연성을 요구하며, 더 정밀하고 세련되길 요구한다. 그리고 예술과 인간세계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무엇을 형상할 것인지는 유효한 패러다임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사회가 이리 복잡해지는 까닭에 이제는 무엇을 형상할 것인지와 동시에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라는 연이은 질문에 복잡한 머리를 쥐 뜯어야 함을 상기하게 된다. 사회적 실천의 구호도 ‘해야 한다’라는 외침형 구호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을 제시해야하는 숙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운동이 보다 더 대중운동 다워지기 위해 진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음악이, 우리의 예술운동이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주장이라서 보편적이지 않다 할 수 있겠지만나는 예술창조는 본성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표현했다. 더군다나 진보적인 내용을 품고 있는 진보음악, 민중가요가 진보적이지 못할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어떻게 형상할 것인가 에도 진보적인 생각이 녹여 나야한다. 내용이 진보적인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는 사실 끝이 났다.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진보의 냄새가 나야한다. 가사 어휘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것에서 부터, 선율을 그려내고, 소리를 내는 모든 것, 음반의 쟈켓부터 나의 노래를 들려줄 대중들의 폭과 넓이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 그들에게 전달되어지는 모든 과정까지 과거보다 더욱 진보해야 한다. 운동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는가. 때문에 나는 현재 우리 민중가요가 진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내용적으로는 과격하고 형식적로는 고루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또 놀라울 정도로 보수적인 것은 아닌가? 형상방법은 대체로 동일하며 가수들의 목소리와 무대에서의 행위는 또 지극히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닌가? 정치적 구호에는 민감하게 가사로 풀어내지만 ‘문건’과 ‘가사’의 차이를 구분 못하고 형상화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민중가요는 진정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 자꾸 되묻게 되는 것이다. 애써 아니라고 응답하더라도, 과거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말해보아도, 혹시 내 의식의 한 귀퉁이 에서 그건 너무 억울한 변명이 아니냐는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적 진보와 민중들의 의식발전,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땅의 문화 속에 우리의 노래에 속도를 붙이기에는 우리의 몸은 너무 무겁고, 너무 많은 옷을 껴입은 것은 아닌가 말이다.


우리 음악은 진보하고 있는가? (by 상구)

Posted by 울라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생을 짤깍~>


*이혜진 1집


1_빨간안경 앵무새
2_눈물만큼 번지는 사랑
3_기차를 타고
4_바램
5_얼씬도 하지마
6_만나니 우린
7_푸르른 시절
8_우리민족끼리 조국통일
9_눈
10_눈물만큼 번지는 사랑(ver2)





눈...
사실상의 첫눈이 내렸다...

왜 눈이 오면
마음이 설레는 걸까...

세상을 온통 하얗게 포근히 감싸주는 눈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사랑을 갈구하는 것일까...

눈이오면
기분이 들뜬다...

그러다 이내..
오래된 친구들이 떠오른다...

너무 오랫만이라
서로 어색할지라도...

메시지라도 주고받아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울라라

         

2003년 이혜진 솔로콘서트중에서...

  첫눈이 왔습니다! 
  첫눈은 모두에게 다르다고 하죠..
  자신의 눈앞에 처음으로 내린 눈이 '첫눈'이니까요...
  첫눈에 반한 날...
  첫눈...
  첫눈...
Posted by 울라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생을 짤깍~)



부시의 선택


대화하기를 왜그리 어려워하니
헤이 죠지 부시야

전쟁하기는 더 어렵지않니
헤이 죠지 부시야

시간은 없어
가장 멋진 선택은 딱 하나뿐

헤이헤이헤이
부시야 평양으로
그것만이 평화로운 길일뿐

헤이헤이헤이
부시야 평양으로
그땐 나도 힘껏 박술 쳐줄께



* 글.곡  백자
노래 : 실천연대 문예위
(박성환, 미래, 우리나라)

펼치기

Posted by 울라라
‘충격요법’보다 충격을 '줄이는게' 먼저

[음악칼럼] 남측가수의 방북공연을 보면서

2006-07-11 오후 11:15:31

       
[강상구 _ 공연연출가] 
2005년 8월 평양 류경체육관에서 공연하는 조용필 모습.
▲ 2005년 8월 평양 류경체육관에서 공연하는 조용필 모습.

지난 6월 15일 조선대학교 대운동장에서 6·15 공동선언발표 6돌기념 민족통일 대축전에서 노래한 이후. 장윤정의 평양 공연 가능성에 대한 뉴스가 한동안 지면을 장식한 바가 있다. 그 후 지금은 어떤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남측의 가수가 북측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은 그 횟수가 많을수록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남측의 가수가 북측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에 대한 원칙적인 의미는 남북문화예술교류를 통해 남북의 동질감을 회복하고, 이를 계기로 민족의 통일을 앞당긴다는 상징성이 있을 것이다. 또한 가수 개인에게는 아직은 ‘갈 수 없는 땅’에서의 공연이라는 긴장감과 더불어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미자, 조용필 등과 같이 남측 최고의 가수들에게 허용되는 듯한 ‘꿈의 무대’라는 상징으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1990년 하반기, 남측 예술인 황병기, 김덕수 등이 참가하고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개최된 ‘범민족통일음악회’ 이후 그다지 뉴스거리가 될 만한 문화예술교류는 전무 하다시피 했다. 1990년대 중후반, 이북은 국상을 치르기도 했고 미국의 경제제재는 심해졌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자연재해까지 심했다. 문화예술교류가 이뤄지기 쉬울리가 없었을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과북 사이에는 정치, 경제 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부문의 교류가 진행되었다. 문화예술교류 역시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많아졌다. 남과북이 함께 치루는 행사가 많아지면서 예술을 빼놓고 행사를 치를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민족적 기질에서 기인 하는게 아닌가 싶다.

‘충격요법’보다 충격을 '줄이는게' 먼저(계속읽기)

Posted by 울라라